바보같은 눈 바보같은 눈 2008. 2. 25 월급날 오후에 눈이 내린다 노란색 타이로 묶어 떠나 보낸 겨울이 가난처럼 창가에 매달려 어색하게 부스러기 눈을 뿌린다 처녀들의 졸업식날 미련 많은 캠퍼스에도 눈이 내린다 성마른 대통령의 선서와 의미 없이 정렬된 박수처럼 생경스런 하늘, 풍경을 부시는 .. 詩舍廊/~2021습작 2008.02.25
당구 당구 2008. 2. 11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당구를 친다 앞 머리가 희끗한 신사는 짐짓 선수처럼 매너가 일품이다 게임 내내 어줍잖은 체면이 따라다닌다 게임을 앞서 가도 미안한 마음이 뒤따르고 그이가 실수를 해도 내가 괜히 쑥스럽다 단지 처음 보는 탓이 아니라 그이가 제법 나이 먹은 .. 詩舍廊/~2021습작 2008.02.11
無詩 無詩 2008. 2.1 수다처럼 詩를 쓰다 실어처럼 詩가 멈췄다 여전히 하늘엔 눈이 내렸고 얼어 붙은 호수는 쩡쩡 시린 울음 울었지만 은박지로 싸인 가슴은 아무런 울림도 없이 무던하다 변함없이 분주한 詩의 거리에서 허기진 머리를 주억여도 냉수처럼 눈물만 날 뿐 마음은 도무지 일어날 줄.. 詩舍廊/~2021습작 2008.02.01
마 차푸차레 마 차푸차레 2008. 1. 24 神의 땅 히말라야엔 쫓겨난 神의 설움이 푸르르다 화이트아웃 흰눈을 부라려도 의심 많은 원숭이는 神의 쇄골에 자일을 감고 발목을 얼려도 모가지를 조여도 고개 박은 프로메테우스는 神의 정수리에 피켈을 꽂는다 神이 쫓겨난 자리엔 대못같은 깃발이 날리고 서.. 詩舍廊/~2021습작 2008.01.24
동창회 동창회 2008. 1. 23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도 계급이 있다. 술잔이 오가는 숲에 키 큰 침엽수들이 우뚝하고 그 아래 초라한 관목들 고개 숙였다. 술잔은 서로 교차하지만 검사의 건배는 용달 기사의 패배가 되고 메마른 취기는 낮은 곳에 깊다. 술잔을 치켜 들며 키 작은 나무 까치발 정강이를.. 詩舍廊/~2021습작 2008.01.23
고춧잎 김치 고춧잎 김치 2008. 1. 16 콘크리트 고치 속에 어머니는 번데기처럼 웅크리고 계셨다 추위에 아플까 무서워 이틀째 꼼짝도 않으셨다 한다 아파트 계단 아래 한 평 땅 고추 상추 농사 끝난지 한 참 살을 발르듯 떼어 놓은 고춧잎 김치 담궜다고 가져 가라신다 벌 한마리 찾지 않는 시든 꽃 어머.. 詩舍廊/~2021습작 2008.01.16
포항 가는 길 포항 가는 길 2008. 1. 10 빠르게 미끌어져 온 KTX를 내려 동대구역에서 갈아 탄 포항행 무궁화호 열차 덜컹거림만큼이나 풍경은 갑자기 느리게 흔들리고 시간은 뒤로 흐르는 듯 하다 세월에 밀려나지 않으려 억척스럽게 수다를 쏟는 할머니들의 거센 사투리가 매케한 냄새 가득한 밀려난 완.. 詩舍廊/~2021습작 2008.01.10
오년 뒤의 나에게 오년 뒤의 나에게 2008. 1. 1 자네 아프던 왼쪽 다리는 좀 어떤가? 원래 부실하던 놈을 오십년씩이나 부려 먹었으니 어쩌면 아픈게 당연할 노릇일세 그래도 자리 보전하여 드러눕지 않고 뛰지는 못해도 걸어는 다니니 다행이라 생각하세 딸 아이들도 이제 곧 대학 졸업을 하겠군 어디 마땅.. 詩舍廊/~2021습작 2008.01.01
아들 아들 --- 감독님 힘내세요 2008. 1. 11 아버지를 떠나 보내기 위해 아들을 부른 아버지가 있다 세상 한 바퀴 돌아 온 아들은 슬픈 아버지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아버지와 이별하는 아버지와 함께 까물한 기억을 걷는다 아버지는 자꾸만 이별을 재촉하고 안타까운 아들의 시간은 그저 맴돈다.. 詩舍廊/~2021습작 2007.12.26
즐거운 시간 즐거운 시간 2007. 12. 26 어딘가를 향하는 시간은 늘 짧다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속도로 압축된 거리를 달리면 목적지는 언제나 너무 빨리 닿는다 아껴 먹듯 멀리 흔들리는 풍경을 차근차근 마음 속에 쌓아도 그들은 벌써 내 뒤를 지나고 그예 내려야 한다 오래 기다려 지친 설레임의 끝 잎.. 詩舍廊/~2021습작 2007.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