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95

엄마가 이겼다.

엄마 동시에 여러권의 책을 읽는 일은 이제 습관으로 돼버린 것같다. 많을 때는 하루에 열 권 정도의 책을 여기저기서 조금씩 읽기도 한다. 오늘은 전자도서관에서 책을 두 권 빌렸다. 한 권은 사무실 모니터 한쪽에 열어놓고 일하다 머리 아프면 몇 줄씩 읽을 요량으로 빌린 박완서의 에세이. 다른 한 권은 출퇴근길 차가 막히거나 신호에 걸렸을 때 거치대에 걸린 핸드폰으로 읽을 거리인 제인 구달의 '희망의 이유'다. 두 권 다 2주 안에 반납을 해야하는데 짬짬히 읽을 수 밖에 없으므로 한 번은 연장을 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제인구달의 책은 700쪽쯤 되니 다시 빌려야 할 지도 모른다. 두 권의 책을 훑어보다가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박완서 1931년생. 제인구달 1934년생. 두 사람 다 어린 시절 전쟁을 경..

다친 황소

다친 황소 나는 대구 사람이다. 두류산밑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나오고 먹고 살 길 찾아 대구를 떠났지만 여전히 내 뿌리는 대구에 있다. 한 여름 영천이 대구보다 덥다하면 기분 나쁘고 인천이 대한민국 세 번째 도시가 된다하면 울화가 치민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지나며 통일신라의 적통 속에 있다 자부한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현대사에서 고립된 광주를 안타깝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다 어느새 제대로 고립된 대구를 보고 화가 나고 속상하는 게 요즘 심정이다. 코로나는 왜 또 내 고향에 쏟아졌는지. 그저 정치적 견해지만 확 멀어져버린 친구들. 친척들, 선배들, 후배들을 보며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한다. 현대사는 대구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의리를 중시하는 대구사람들을 현대사가 이용했다고. 이 말도 적..

거리 距離

距離 설날이니 어머니한테 다녀왔다. 편찮으시다 세배도 안 받으신다. 세배 드릴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데 한 번 빼먹는게 섭섭하지만 그게 그 세대의 규칙이라니 어쩔 수 없다. 도착하자마자 주의를 부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잔소리, 두 손녀 시집 빨리가라는 지청구는 오늘도 이어졌다. 유전자의 명령은 늘 집요하다. 어머니의 소멸은 오늘도 확인됐다. 귀가 잘 안들린다 한 지는 제법 됐지만 냄새를 잘 맡을 수 없다고 하신다. 맛도 그렇고. 그래도 아내가 끓여준 떡국은 맛있다면서 잘 드신다. 혀로 느끼는 맛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맛이겠지. 목 위의 모든 감각들이 쇠잔하고 있으니 아마 머리 전체가 그런 탓이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다. 어머니는 그렇게 조금씩 우리를 떠나는 중이다. 언젠가부터 명절이면 우..

불편한 관계

불편한 관계 살아가는 일은 여러 사람들과 이러저러한 관계 속에 사는 일이다. 이 숱한 관계들은 종종 불편함이란 이름으로 얽힌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상대는 가장 가까운 아내일 수도 있고, 사실 가장 자주 불편해지는 관계일터지만, 어쩌다 한번씩 마주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불편을 일으키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나나 상대의 이기심일 수도 있고, 오해가 개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적의, 공연한 질투 같은 것도 원인이 될 것이다. 어쨌든 불편한 관계는 불편하다. 아내와 다투고 며칠 서로 말을 하지않고 지내는 시간은 몹시 불편하다. 행동의 불편도 있지만 대부분 마음의 불편이 더 크다. 마음 속에 얽힌 거친 매듭을 보며 매듭 자체에 화를 내기도 하고 어떻게 매듭을 풀까 고민하기도 한다. 그 모든 생각들..

변두리 詩論

변두리 詩論 이쯤에서 솔직히 인정하자詩를 붙들고 있었던 지난 날들이 사실은 초라한 나를 위로해 줄 내가 가진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음을그리고 인정할 또 한 가지詩에 관한 한 내 재주는 도무지 예술의 언저리에라도 닿을 가능성이 거의 없음은 물론가소로운 정신과 무디기만 한 머리는예술의 세계 속에 있는 詩들을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이 정도에서 설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현명하다이 정도의 생각이라도 해내는 머리에 감사하며하지만 오랜 시간이 깎아낸 습관은 집요해서책을 손에서 놓으면 문자 금단 증상이 나타나고읽다보면 뭘 또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무우 자르듯 끝내지는 못할 것 같다 어떻게 할 것인가한 가지 드는 생각은 이젠 나름 수고한 내 인생에게 기쁨을 주자는 생각이다뭘 이루겠다고 휘청거리는 ..

이기적인 분노

누군가 페이스북에 어느 집에서 키우는 누렁이를 학대하는 사진과 글을 올렸다. 순간 또 울컥했다. 화가 치민 것이다. 말 못하는 동물을 저렇게 학대하다니. 저 강아지는 그래도 주인이라고 꼬리 흔들고 좋아라 할 때가 많을텐데, 정작 주인이라는 작자는 대충 키워서 잡아 먹던가 팔아버릴 생각을 하는 인간임이 틀림 없을거야. 같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었다. 그런데 나는 왜 화가 났을까?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가끔 하긴 하지만 과연 내가 동물애호가 또는 생태주의자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는데 말이다. 그저 그 분노는 내 마음 어딘가에서 6년째 집에서 키우고 있는 우리 강아지에 대한 애틋함이 솟은 탓이 아닐까? 만약 우리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화가 났을까? 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