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95

제비꽃

. . #제비꽃 지난 일년 동안 매일 꽃을 하나씩 포스팅 했습니다. 이왕 꽃 이름 공부를 하는 김에 랜선 친구들에게 같이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 싶어서였습니다. 가능하면 우리 꽃을, 적어도 우리 이름을 가진 꽃들을 알리려고 했습니다. 제 꽃 공부는 잘 된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꽃과 이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물론 아직도 모르는 것이 더 많지만요. 그래서 올 한 해도 더 해볼까 합니다. 밑천이 달려서 풀과 나무도 함께 할 작정입니다. 올해 첫 꽃은 제가 꽃중에 제일 좋아하는 제비꽃입니다.^^ 작년 파주에서 일할 때 사무실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제 철도 아닌데 길가 나무밑에 느닷없이 피어있던 녀석입니다. 저는 이제 그곳을 떠났지만 그 뜬금없는 자리에 꿋꿋이 피어 있던 이 제비꽃 생각은 오래 남..

송년정리

. . #송년정리 1. 올해 성경읽기는 신구약 통독 1회 후 요한복음 읽기로 마무리. 여전히 나는 神으로부터 아직 멀리 있다. 내년엔 조금 더 가까워 지고 싶다. #송년정리2 한해 동안 대략 250권의 책을 읽고 세상에 詩를 11편 내놓았다. 책은 얇은 시집 포함해서 사흘에 두 권 정도 읽은 셈이다. 회사에서 짤린건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너무 많다. 허겁지겁, 얼렁뚱땅 읽은 탓이다. 새해에는 100권 안으로 읽자 맘 먹는다. 시집은 한 권을 일주일 동안 읽기로. 새책을 사기보단 있는 책을 다시 정독하기로..

텅 빈 크리스마스

. #해피크리스마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카드가 왔다. 십 년 이상만에 처음 받은 카드다. 반가운 목사님 이름과 글. 역병의 시대. 모두들 힘들지만 누구 못지 않게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교역자들이다. 난생 처음 겪는 예배 중단. 이분들의 무력감, 낭패감은 얼마나 클까? 교회를 향한 세상의 증오를 견디는 일은 또 얼마나 쓰라릴까? 작지 않은 교회 살림은 어떻게 꾸려지고 있을까? 텅 빈 예배당 아래 좁은 사무실에서 늘 보던 교인들을 생각하고, 마당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을 생각하는 하루하루는 얼마나 낭패스러울까? 이분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떤 기도를 하고 있을까? 나는 이분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할까? 텅 빈 크리스마스. 하나님은 이 슬프고 화나는 세상에 무슨 메시지를 던지고 계신가? 빈 교회에 ..

송년 일상

. 송년 일상 변함없이 아침 여섯시반에 일어나 십분 스트레칭, 시리얼 한 컵 먹고 성경 두 장 읽고 한 장 쓰고 잠깐 묵상. 라디오에선 바흐의 무반주 첼로가 흐르고 커피 한 잔 마시며 꽃 한 송이 올린다. 네루다의 시 두 편, 이름 모르는 젊은 시인들의 시 두 편, 모파상의 단편 한 편, 짧은 수필 한 편을 읽고 김소연시인의 마음 사전 한 꼭지를 읽으며 하루 첫 두 시간을 시작한다. 조금 있으면 노트북에선 주식거래가 시작될 것이고 강아지는 늦잠을 잘 터. 하루는 오늘도 느리게 갈 것이고 여전히 외출은 없다. 둘째가 좋은 의자를 보냈다. 가능하면 침대에 눕지 않고 책상에서 하루를 보내고자 하는 입장에서 큰 도음이 된다. 오후에는 미뤄뒀던 그림을 다시 시작하고 러시안 스프를 끓이며 영화도 한 편 볼 작정. ..

첫 집

. 첫 집 엄동설한에 화장실 수리한다고 해서 강아지랑 큰 딸집으로 대피. 35년전. 대학 졸업하고 서울에 취직해서 처음 독립살이를 위해 얻은 집은 이대앞 염리동 언덕받이에 있는 세탁소집 문간방이었다. 화장실도 주방도 없는 방문 열면 바로 대문이고 연탄 아궁이 하나 달랑 있던 그 방 생각이 난다. 주인 아저씨 이름이 임재덕. 나하고 이름이 같아 밤에 친구들이 대문 밖에서 날 부르면 아저씨가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는 그 집, 그 방. 옆 방에는 술집 나가는 아가씨와 소매치기 남자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사는 동안 단 한 마디 말도 서로 나눈 적 없었다. 임대 행복아파트지만 반듯하게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 독립한 삶을 살고 있는 딸 집에 종일 누워 있으니 그 시절 생각도 나고 바뀐 형편 생각도 난다. 내가 뭘 도와..

소견머리

. 소견머리 저자는 내 고등학교 선배이다. 문예부 모임에서 한 두번 본 기억은 있지만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공직 생활을 마치고 수필을 꾸준히 쓰고 작은 책도 매년 한권씩 펴내고 있는 분이다. 책이 나올 때마다 우편으로 보내주시는데, 주소는 우리 집이지만 수신인은 또 다른 선배님이다. 반송도 어렵고 해서 그냥 두고 있는데 읽어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읽을 책이 밀려있는 탓이 크지만 그보다는 이 선배의 처신이 맘에 들지않은 탓이 더 크다. 선배는 고교 문예부 오비 모임에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본인 책이 나오면 그 모임 멤버 전체에게 책이 나왔음을 알리고, 어디 기사라도 나오면 그것도 알뜰히 링크해서 알려준다. 그게 맘에 들지 않는다. 공동체는 함께 만드는 것인데 이 분은 공동체를 이용만 한다는 ..

미드웨이를 보면서

. 미드웨이를 보면서 욕망과 (허위) 영화를 보며 생각한 두 단어다. 태평양전쟁 미드웨이야 오래 전 버전으로 본 적이 있고 새롭게 스펙타클을 더해 볼만하다고 하지만 결국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아메리칸 드림, 팍스 아메리카나를 고양하는 웅변 밖에 메시지는 없다. 그래도 재미 있는 건 오감을 자극하는 영화 쟝르의 미덕이다. 전쟁 영화는 참 오랜만에 봤다. 사실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아무 생각없이 두 시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로맨틱 코미디나 무협, 갱스터, 에로 영화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데 왜 자주 안보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좀 민망하다. 깊이가 없어서, 너무 상업적이어서, 인생에 별 도움이 안돼서 같은 이유를 떠올려 본다. 돌려말할 것 없이 폼나지 않아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그때 그사람들

. . 그때 그사람들 오늘 페친들의 글에 그때 그사람들의 요즘이 많이 보인다. 고종석, 유종호, 홍세화.. 한 때 공감되는 글로 만났던, 나름 선명했던 사람들. 지금은 다른 곳에서 희미하게 선 사람들. 다 뜻이 있고 이유가 있겠지만 내 선 자리와 머니 낯설다.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편 궁금은 하다. 십여 년전쯤, 노통 돌아가시기 직전, 진석사 등이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본다. 어떤 징조에 대한 일말의 공감은 있다. 이른바 '빠' 신드롬에 대한 경계였는데 지금은 그자리에서 함몰되어 그를 빠뜨린 늪이 된 것 같다. 스스로의 선명성에 집착한 논리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사람들. 광고에서는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 라고 말하기도 한다.

멸치를 다듬는 시간

. 멸치를 다듬는 시간 김장 준비를 위해 오늘은 성경 읽기 쓰기 대신 멸치를 다듬는다. 꾸득꾸득 말린 멸치 등을 눌러 갈라 내장을 꺼낸다 바다를 떠난지 오래 삶기고 말려진 목숨들 속을 비운다 아직도 부족해 다싯물로 마저 뽑히기 위해 문드러진 육신으로 떠나기 위해 멸치는 제 속을 비운다 새까맣게 텔레비전에서 법정스님 의자를 본다. 요즘 시끄러운 잘난 스님들 그도 못지않게 잘났으니 뭐라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든가 말던가 댓돌 위엔 떠난 스님 고무신만 남았고 내앞엔 한 무더기 멸치 똥만 남았다. 201120

떠난 이에게 건네는 축하

. 떠난 이에게 건네는 축하 오늘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일이다. 오십 며칠을 채웠다면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여든여덟 축하를 드렸을 것이다. 주말에 담글 김장 이야기를 나누며. 그 두 달 남짓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신 어머니의 생일은 이제 아무도 축하하지 않는다. 그저 맏이인 탓에 관성처럼 기억을 하고 있는 나만 빈 집을 생각하고 있을뿐. 죽은 이의 생일이란 어떤 의미인가. 태어났으니 죽을 수 있다는 자각 같은 정도인가. 하지만 그 거리가 이처럼 가까울 때는 좀 난처하다. 거리는 나를 낳아준, 한 몸이 분열된, 또다른 내가 어머니라는 혈육의 거리도 있고 불과 얼마전까지 찾아가면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전화를 걸면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었다는 시간의 거리도 있다. 실감이라는 말이 있다. 며칠 전 꿈에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