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95

성경 쓰기

. 성경 쓰기 몇 년째 아침이면 컴을 켜고 성경을 한 장씩 쓴다(?타이핑 한다) 이건 그저 평생을 교회에 다닌 내게 내가 준 숙제이다. 지금까지 성경은 적어도 열댓 번은 읽었을 것이다. 50년 동안 열댓 번이면 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신에 대한 나의 신뢰는 쉽게 흔들린다. 한 달 수입보다 무겁지 못할 때가 많다. 죽을 때까지 이 신뢰의 미진함과 좁혀지지 않는 거리는 그대로일지 모른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이 숙제를 묵묵히 하는 이유다. 당신이 죽을 때까지 꼭 달성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초월자와 나의 관계를 알고싶고 좋은 시 한 편을 남기고 싶고 내 아내가 여한 없는 행복의 순간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 이제 성경 66권중에 65% 정도를 썼다. 시간이 오래 걸릴듯 하니 아껴 써야..

시간 죽이기

. . 시간 죽이기 쌓인 시간이 제법 부담스럽다는 걸 요즘 느낀다. 시간이 없다. 너무 바쁘다 하는 말은 살면서 그리 많이 해보지 않았다. 일하는 손이 좀 빠른 편이기도 하고 천부적인 게으름이 일 자체를 많이 만들지 않는 탓도 있다. 평생 계획을 세우고 그 틀안에서 움직여야 불안하지 않은 소심함도 한 몫했을 것이다. 어쨌든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는 상황은 내 평생에 손에 꼽을 정도였을 것이다. 두 달 반. 칩거하면서 빈 집에는 시간이 넘친다. 가끔 약속이 있어 나가기도 하지만 일 주일에 닷새 정도는 집콕이다. 그러다보니 널린 시간의 무게와 싸우는 일이 제일 큰 일이 되었다. 내가 시간과 싸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간을 잘게 썰어 조금씩 소모하는 전략이다. 깨어 있는 하루를 한 시간 단위로 잘라 ..

여덟시에 떠나는 두 편의 기차

. . 여덟시에 떠나는 두 편의 기차 몇 년 전 택시운전을 할 때의 일이다. 한 주간씩 번갈아 주간근무와 야간근무를 교차해야 했다. 일주일 단위로 밤낮이 바뀌는 생활은 하루 열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하는 고됨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특히 야간근무의 경우 오후 다섯 시에 집을 나서 꼬박 밤을 새워 운전을 하고 다음날 새벽 여섯시쯤에 집으로 돌아오면 온몸은 녹초가 됐었다. 바로 잠을 자야 오후에 다시 일을 나갈 수 있지만 피로와 각성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아침에 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간단한 조반에 소주를 몇 잔 곁들여 각성을 무디게 만들어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이런 저런 힘듬 덕분에 일년반 정도의 택시 운전수 노릇은 몸무게의 10% 정도를 덜어낼 정도로 만만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혹독한 밥벌이의..

묵은 시집 읽기

. 묵은 시집 읽기 아는 형님은 얼마전 오래된 시집을 내다 버리셨다는데 나는 요즘 오래된 시집을 꾸역꾸역 새로 사서 읽고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새 시집 살 돈이 아까워 헌 시집을 사서 읽는 것이다. 굳이 하나 더 이유를 찾자면 새 시집들 상당수는 내게 너무 어렵다는 것 정도. 최신의 시 경향을 알고 넘어서고자 노력하는 것이 시인의 자세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애시당초 나라는 자는 대단한 시인이 될 싹수가 없으니 그런 노력은 하고싶지 않다. 그저 시를 읽어 마음이 좋으면 그만. 오래 된, 그래 봐야 한 이삼십 년 전 정도지만, 시들은어쨌든 편하다. 내 젊은 날들이, 시절이, 역사가 그곳에 있다. 그곳에는 또 그 무렵 시인들의 날카롭고 깊은 슬픔들이 있다. 세월이 지났다고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

촛대

. 촛대 돌아가신 어머니 집에서 촛대 하나를 가져왔다. 쇠로 만들어 은색 도금을 한 묵직한 촛대다. 정확치는 않지만 우리 집안에서 제일 오래된 물건일 것이다. 아마 오십 년은 족히 되지 않았나싶다. 한참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철공소에서 오래 일했다. 큰아버지가 철공소를 운영해 일가를 이루셨고 아버지도 그 곳에서 일을 하셨다. 기능공은 아니지만 타고난 눈썰미와 손재주로 한 몫을 하셨다. 촛대는 그 시절 아버지가 공장에서 직접 만드신 물건이다.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촛대 외에도 부엌의 부삽이나 연탄불 뚜껑 같은 것들도 만들어 썼던 것 같은데 소용이 다해 모두 없어지고 그나마 최근까지 쓸모가 있었던 촛대만 남은 것이다. 어머니 방 냉장고 위에 언제나 놓여있던 빈 촛대. 길고 하얀 양초를 꽂고 심지에 불을 붙인..

계급.

결국은 계급의 문제다. 계급은 계급을 확대 재생산하는 일에 전력한다. 계급의 특권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일에 계급은 최선을 다한다. 계급이 계급의 이익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계급의 동력은 자본이다. 계급의 형태는 다양하고 서로 견제하는 듯 하지만 지향은 동일하므로 궁극적으로 협력한다. 공격하지만 돌아서서 사과하고 전략을 공유한다. 계급은 아래에서 올라올 수 있는 사다리를 경계한다. 수렴된 계급은 계급의 공고함에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전원, 로스쿨은 계급이 쌓는 노골적인 벽이다. 계급의 후세는 무지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경험이 원천적으로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계급의 혜택만 학습되고 계급을 계승하는 기제에 의해 키워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든 고시는 ..

예수는 스테반을 기다린다

예수는 스테반을 기다린다. 우리가 늘 바라보는 십자가. 세로로 길고 가로는 짧은 나무 두 개가 직각으로 꿰인 구조체. 그 곳에 예수가 못박혀 죽은 상징은 강력하지요. 십자가의 세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가로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메시지의 상징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속된 생각으로 하나님 사랑을 이웃 사랑보다 좀 더 하란 의미로 세로가 길다 생각하구요. 아, 가로 세로 길이 같은 십자가가 오리지널이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한 예수는 성경 신구약의 전 메시지가 구조체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진정한 복음의 가치를 영원히 남겼지요. 그저 나무로 만든 종교 공동체의 상징이 아니라 복음의 로고스가 고스란히 새겨진 십자가가 온 천지에 홍등가 불빛처럼 싸구려로 빛나고 있는 현실은..

절름발이

절름발이 나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다리가 짧고 가늘다. 그래서 걸을 때 전다. 요즘 말 많은 절름발이다. 사는 동안 꽤 불편했고 나이가 들면서 그 정도도 조금씩 더해가고 있다. 국민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의 놀림도 좀 받았다. 그 녀석들은 '절뚝발이'라고 불렀다. 그때 생각으론 내가 지들보다 공부를 잘해서 놀리나보다 했었다. 그 후로 오십 년 동안 다리 전다고 뭐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기형적인 다리를 보여주기 싫어 고등학교때까지 공중목욕탕을 가지 않았다는 것과 점멸 신호에 횡단보도를 잽싸게 달려 건너지 못한다는 정도가 불편함으로 남아있다. 절름발이, 절뚝발이 라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기는 한다. 그 또한 내 정체성의 일부인 탓이리라. 부조화, 부적격을 비유하는 말로 '..

야생의 위로

황금 연휴가 시작됐다. 나는 중간에 출근을 해야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느긋한 봄날 연휴를 즐기게 돼서 집안 분위기도 오랜만에 느릿한 오전이다. 최근에 각자 독립 분가한 두 딸이 연휴를 같이 지내려고 저녁에 온다고 해 낮 동안 아내와 강아지와 함께가까운 곳에 가서 꽃도 보고 차도 한 잔 마시고 올 계획인데시간이 좀 남아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에마 미첼의 '야생의 위로'. 얼마전 페북에서 김이듬시인이 읽고 있다는 글을 보고 검색해보니 우울증을 앓는 저자가 자연 속에서 기쁨을 찾아 스스로를 지켜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담긴 책이라 했다. 돌아오는 토요일은 둘째의 생일이다. 녀석도 살짝 멜랑꼴리를 앓고 있어 힘들어 한다. 생일 선물로 주려고 책을 주문했는데 좀 일찍 왔다. 사실은 일부러 일찍 주문했다는 게 맞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