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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 오월 * 시작부터 지쳤다. 봄 바람이 드세다. 미운 곳에서 청탁이 왔다. 칠월의 일을 논하는 일, 아직은 잊자. * 내 몸인데 왜 당신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가 가족은 모두 당신 사랑의 틀에 맞아야 하는가 당신의 생각 대부분 맞지만 어디 세상이 정답으로만 살아지는가 당신의 불편함 그것 때문에 나는 얼마나 침묵해야 하는가 * 내가 지긋지긋하다.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 90년대 초의 시집을 읽는 일 30년, 긴 목숨의 황지우, 황동규. 내게 詩는 그저 저 시절. * 예술은 예술가가 하는 것 허수경은 그렇게도 예술가가 되고자 했는데 詩는 꼭 예술이어야 하는가? 詩는 詩면 되지 않나? 그래서 난 예술을 못하나? 어쩔 수없는 딜레땅뜨여.. * 트레이너는 자꾸 가슴을 펴라 한다. 가슴이 하늘을 보게 하라 한다...

안양보청기, 평생 나를 지켜주다 지친 귀에게 보청기로 도움을 주세요

뻔뻔한 말하기와 속수무책의 듣기 ​ 오늘은 지방자치선거일(이 말이 맞나?)입니다. 이미 사전투표를 마친 저에게는 그저 뜬금없는 주중 휴일이지만 습관처럼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있습니다. 거리가 오랜만에 조용합니다. 입 다문 현수막들만 바람에 펄럭이며 소리 없는 마지막 외침에 열심입니다. 어제 저녁까지 선거용 차량에서 쏟아지던 확성기 소리는 싹 사라졌습니다. 그 막대한 소리들은 지금 어디에 쌓여 있을까요? ​ ​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말하지만 선거만큼 말하기와 듣기 사이에 엄청나 괴리가 있는 경우가 있을까요?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의 큰 소리를 쏟아내고 그보다 훨씬 많은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소리들의 폭력에 대책 없이 노출됩니다. 잘 하겠다. 믿어 달라. 무엇을 하겠다. 저 사람보다 내가 낫다. 나를 찍어 달..

안양보청기, 6월에 굿모닝보청기만안센터에 오시면 보청기 싸게 살 수 있습니다.

유월을 맞는 마음 ​ 오늘이 오월의 마지막 날이군요. 참 아름다운 오월이었습니다. 흙이 있는 곳마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연두빛 산기슭들은 이제 짙은 녹음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왕성한 생명의 계절이 시작되겠지요. 내일 선거가 있어 거리는 막바지 유세로 소란하지만 푸룻푸릇한 목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른 하늘을 향해 팔을 뻗을 겁니다. 모처럼 찾은 활기로 사람들 또한 그 생명력을 흠뻑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 ​ 유월은 굿모닝보청기만안센터가 문을 연지 딱 1년이 되는 달입니다. 개업 일자는 6월 20일이고 1년 전 오늘은 사무실 임대차 계약을 맺은 날이군요. 시간은 참 거침없이 흐릅니다. 처음 만안구청 앞에 굿모닝보청기만안센터를 열기로 마음먹었을 때 여러가지 막막한 심정이었습니다. 몇몇 지인들이 있긴 ..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눈을 뜨며 사각형 침대에서 나를 꺼낸다 사각형 갑에서 담배를 꺼내 피고 사각형 테블릿에서 음악을 흘린다 사각형 노트북에선 사각형 성경이 나오고 사각형 책상에 앉아 사각형 시집을 펼친다 사각형을 마저 채우지 못해 詩인 詩들 사각형 문을 지나 사각형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다시 사각형 책상 앞에 사각형 벽에 붙은 사각형 계획들 사각형 시간에 따라 사각형으로 실천한다 사각형의 하루가 직각으로 꺾이며 조금씩 완성된다 사각형 현관을 나서 사각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각형 아파트를 나설 것이다 사각형 식탁에 앉아 사각형으로 한 잔 하기 위해 사각형으로 친구들은 모일 것이고 사각형 태양이 서쪽 아래로 저물 때 사각형을 구기며 우리는 일찍 취할 터 사각형이 쓰러지지 않도록 사각의 어깨를 서둘러 밀어 넣..

비빔국수

비빔국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자꾸 움직여보라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줄 알면서 그래도 움직여 보란 말에 꼼짝 못하는 울화를 쏟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게 내 탓이냐 움직이도록 하는 게 바램 아니냐. 화가 돌아오고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움직이라 건 폭력이다. 되 쏟습니다 모처럼 집에 왔던 딸들 난감하게 제 집으로 돌아가고 조는 강아지 사이에 두고 입 다물고 있습니다. 속 모르는 사람, 각자 속으로 그랬습니다. 뚝딱뚝딱 참기름 냄새 나더니 비빔국수 두 그릇 상에 놓입니다. 아내는 검은 고명처럼 암 말없고 저는 옆으로 설설 기어 딸이 숨겨 놓은 소주를 더듬습니다. 국수 가닥 깊이 잘 버무려진 묵은 김치를 찾아 한 잔에 한 점 목 따갑게 삼킵니다. 긴 오해의 가닥들 탱탱하게 꼬인 것들에 취하는 시간입니다. 요모..

수학자의 아침 /김소연

. 강과 나 / 김소연 지금이라고 말해줄게, 강물이 흐르고 있다고, 깊지는 않다고, 작은 배에 작은 노가 있다고, 강을 건널 준비가 다 됐다고 말해줄게, 등을 구부려 머리를 감고, 등을 세우고 머리를 빗고, 햇빛에 물기를 말리며 바위에 앉아 있다고 말해줄게, 오리온 자리가 머리 위에 빛나던 밤과 소박한 구름이 해를 가리던 낮에, 지구 건너편 어떤 나라에서 네가 존경하던 큰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나도 들었다고 말해줄게 돌멩이는 동그랗고 풀들은 얌전하다고 말해줄게, 나는 밥을 끓이고 담배를 끊고 시간을 끊어버렸다고 말해줄게, 일몰이 몰려오고, 알 수 없는 옛날 노래가 흘러오고, 발가벗은 아이들이 발가벗고, 헤엄치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강가, 뿌리를 강물에 담근 교살무화과나무가 뿌리를 강물에 담그고, 퍼덕이는 ..

안양보청기 - 소리 소문을 한번 내볼까 합니다.

소리 소문을 한번 내볼까 합니다 ​ ​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보청기센터를 운영하는 일은 내 직업이고 글을 쓰는 일은 좋아하는 일인데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조금 생각해보니 공부를 좀 더 해서 소리에 대한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단순히 난청이나 청각학과 관련된 소리가 아닌 인간의 오감 중 하나인 듣기의 원천으로서 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소나무숲에서 흘러나오는 바람 소리,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소리, 늙은 강아지 심장 뛰는 소리, 얼마나 많은 소리가 있는지요. 눈으로 보는 것 말고 우리는 수많은 소리로 세상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그 소리에 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요? ​ ​ 그리고 그 ..

월간조선 기사

[詩集 신간] 김재덕 시인의 《나는 왼쪽에서 비롯되었다》 갈치를 바르며 자분자분 당신은 목에 걸린 기억을 뽑는다 글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부여 성흥산성의 아침. 400살 느티나무 모습이다. 사진=조선일보DB 경기도 안양에서 사는 김재덕 시인(1962~)이 귀한 첫 시집 《나는 왼쪽에서 비롯되었다》(곰곰나루 刊)을 보내왔다. ‘시인의 말’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환갑이 되어 첫 시집을 낸 시인의 ‘약속’을 되새기며 서시 ‘곡즉전(曲則全)’을 읽었다. 곡즉전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문장이다. ‘굽으면 온전해지고 휘면 펴지게 된다’(曲則全, 枉則直) 등 굽은 소나무가 고향 선산을 지킨다는 말과 비슷하다. 지혜로움을 느끼게 한다. 단숨에 읽어 보았다. 곤두박이 바람들 잎 떨구고 갔나 보다 뼝대에 별빛 스..

안양보청기 - 보청기 충분히 고민해보고 결정하세요.

잘 기다리는 일, 보청기센터 원장의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 ​ 창밖 햇살이 선명한 날입니다. 이런 날은 낚시를 가야 하는데 여전히 사무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씨앗에서 싹을 틔운 바질 네 포기가 흙을 밀어 올린 떡잎 두 장을 뒤로 하고 제법 모양을 갖추며 자라고 있습니다. 환경을 만들어주면 나머지는 시간의 일입니다. 한두 달 정도 후면 무성해진 바질의 향을 맡을 수 있겠지요. 지금 막 도착한 여름이 도와주리라 믿습니다. ​ 작년 이맘 때 생각이 납니다. 사무실 계약을 마치고 인테리어 설계를 마무리했던 즈음인 것 같습니다. 얼추 일년이 가까워오고 있는 셈입니다. 낯선 안양에 사무실을 내고 일년을 지내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맨 처음 고객이 찾아오셨던 날, 한 달을 고스란히 공쳤던 어느 달, 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