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여행 철 들기 전부터 늘 떠나는 꿈을 꾸었다 잠들기 전 내 이부자리는 땟목이었다 철 들어서는 객기로 떠나기도 했었다 주로 바다였고 낯 선 곳도 가끔 있었다 철이 녹슨 뒤부터는 다시 꿈을 꾸었다 무시로 모의를 했으나 쉬 떠나지는 못했다 어쩌다 떠나도 그저 운전수였다 글피.. 詩舍廊/~2021습작 2018.03.12
선술집 선술집 그때 오늘처럼 비오던 저녁 그곳 서대구시장 모퉁이 찌그러진 술집 구운 양미리 두 마리 간장 종지 하나 금복주 한 병 연탄 가스 몇 줄기 가난 두어 점 술은 어김없이 쓰고 찼지만 곧 빌까 한 잔을 네 번 꺽어 고이 마시던 날 창밖에 어두운 비 내리는 이 안온한 침대 위에서.. 詩舍廊/~2021습작 2018.03.04
아무 생각 아무 생각 쉴 땐 아무 생각 없이 쉬세요 아무 생각 없는 위로가 도착한 오후 그나마 남은 생각마저 없앨 수 있을까 향 없는 커피 한 잔 사치스런 시인의 시 몇 편 겨드랑이 밑에 잠든 강아지 아무 생각 없는 코 고는 소리 내일은 이빨을 마저 뽑고 빌린 책들을 반납하고 빈 냉장고를.. 詩舍廊/~2021습작 2018.02.25
헛 일 헛 일 빌려 읽는 시집에 먼저 빌려 읽은 사람이 뭘 잔뜩 써놓았다 제목에, 번호까지 매겨가며 시인의 시를 따라 자기의 시를 써놓았다 할딱할딱 뒤집어가며 봄밤이 파릇한데 흙먼지를 뒤집어 써 이도저도 안읽힌다 이 양반, 시인이 되고 싶은게지 그래도 연필로 썼다 쓸 때는 지우.. 詩舍廊/~2021습작 2018.02.24
토끼 만들기 토끼 만들기 첫 번째 구멍에 구멍보다 좀 더 큰 구멍이 뚫린 풀보자기를 씌우고 흔들리는 돌 하나 뽑더니 구멍 천정을 깎는다 긁어내는가 싶더니 잡아 당기고 뒤흔들고 갈아낸다 급기야 드릴 소리 구멍 천정이 덜덜 떨린다 돌가루가 떨어지고 패인 틈으로 진득한 것들도 떨어지고.. 詩舍廊/~2021습작 2018.02.20
기도 기도 하나님 아버지, 큰 아들 김아무개 지가 바라고 원하는 일들 다 원만히 이룰 수 있게 도와주시고.. 일 년에 세 번 엄마의 기도는 똑같이 시작했다 해가 바뀌어도 순서가 바뀌지 않았다 큰 아들 작은 아들 큰 손녀 작은 손녀 마지막에 며느리 아내는 낮은 서열이 늘 불만이었지.. 詩舍廊/~2021습작 2018.02.19
77년 77년 자네들이 있는 그곳으로 가는 일은 쉽지 않았네 가장 뜨거운 해가 헛바닥을 빼물고 지나고 있었지만 정작 그림자의 농도가 더 짙었다네 이미 지나온 길이 아닌가 자넨 그렇게 말할 수 있네 가끔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네 살 때 잘린 손가락의 고통 같은 것 그때 나는 왜 화가 .. 詩舍廊/~2021습작 2018.02.13
친절의 낙상사 친절의 낙상사.. 김상철 정자동으로 당구치러 오라던 친절은 떠났다 괴산 즈음 핸들이 서쪽 하늘에 부딪혀 벌벌 떨 때 문자 한 통으로 닿은 기별 복구 어머니 문상은 핑계가 되고 말았다 별로 친하진 않았지 사실 몰랐다는게 맞지 그래도 친절은 친절했다 어두운 동해 기슭 건성건.. 詩舍廊/~2021습작 2018.02.04
한파 한파 가난한 산 살찌고 늙은 삵 한 마리 애써 웃으며 능선을 부지런히 걷는다 소문은 눈발에 실려 발톱을 뽑고 으르렁 호기는 찬 하늘에 식어 돌아갈 길 그 길마저 지우고 맴맴 제자리는 바닥만 깊어가고 20180125 詩舍廊/~2021습작 2018.01.25
끝을 만나러 가는 길 끝을 만나러 가는 길 고집스런 동쪽에서 어젯 밤 취기가 먼저 오더니 기어이 친구가 왔다 서남의 끝에서 서북의 끝으로 버스는 흐린 우회를 거듭한다 사흘째 동진하는 먼지들이 겨울해의 퇴각을 지우는 오후 시내는 소요로 분주하다는 소식 발끝 하나 꽂을 수 없는 지하철로 몰려든다 겨.. 詩舍廊/~2021습작 2018.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