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월의 베드로 팔 월의 베드로 너희가 모두 나를 떠날 것이다 초저녁 쏟아진 말이 달무리를 따라 떠돌다 희미하게 지워졌다 모두들 달의 윤곽 속으로 사라졌다 죽어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자정 넘어 비에 젖은 몇 마디가 담을 넘었다 누구를 만났는 지는 모른다 불을 쬐고 있던 축축한 그림자 하나 .. 詩舍廊/~2021습작 2019.08.31
식구 어떤 역사 장인은 위암으로 세상을 떴다 한다 아무리 술을 먹어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몸에 좋은 음식이면 뭐든 챙겨 드셨다 한다 그래도 암이 걸렸고 삼 년 만에 집안 거덜내고 돌아가셨다 한다 처제도 몇 년 전 위장을 다 떼냈다 아버지 꼴 나지말자 건강식품 뒤져가며 몸 .. 詩舍廊/~2021습작 2019.08.30
더위 더위 거리는 불편하다 다리 저는 강아지의 목마름처럼 목 꺾인 해바라기의 좌절처럼 바싹 붙어 앉은 한 움큼의 그림자처럼 점멸 중인 좌회전 신호처럼 에어컨 실외기 돌아가는 쇳소리처럼 목덜미를 끄집어 내는 땀처럼 거리는 불편하다 다닥다닥 집을 지은 거미들 생계처럼 자꾸 닿는 .. 詩舍廊/~2021습작 2019.08.10
휘파람 휘파람 휘파람을 잘 불고 싶었다 멋지게 예스터데이를 불고 싶었다 한번도 바램은 이뤄지지 않았는데 어쩐 일인지 말을 해도 노래를 불러도 휘파람이 따라 나온다 어서오세휘 안녕히 가세휘 이것은 인사인가 힐끔 돌아보는 손님 그게 아니휘 죄송휘 휘파람을 막으려 입을 다물어야겠다 .. 詩舍廊/~2021습작 2019.07.23
펫 펫 아침이면 나만 두고 모두들 나간다 파주로 출근했다 한밤에 돌아올 아빠 영등포에서 종일 전화통과 씨름할 엄마 여의도로 가는 큰 언니는 그나마 낫고 을지로 가는 작은 언니는 이짓을 어떻게 앞으로 몇 십 년 더하지 거뭇한 눈가로 한숨이다 그러면서도 모두들 내 걱정이지 밥은 혼.. 詩舍廊/~2021습작 2019.07.23
사회선생 사회 선생 중학생 시절 얼굴은 눈에 선한데 이름은 ㄱ도 생각 안나는 선생이 있었다 사회 시간에 누군가 졸다가 떠들다가 걸리면 모두 일어서야 했다 옆자리 짝궁과 좌우향 마주보고 한 번 씩 웃어라 시켰다 그 다음 왼쪽 놈이 오른쪽 놈 뺨을 쳐라 다음은 맞은 놈이 때린 놈 뺨을 쳐라 실.. 詩舍廊/~2021습작 2019.07.23
입장 입장 혼자 가만히 있는 게 좋아 반쯤 눈 감고 누워 있는 게 좋아 늘 아무 생각 없기를 바래 아침에 눈 뜨는 일이 너무 싫어 이쯤되면 죽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190207 詩舍廊/~2021습작 2019.06.25
포구 포구 바다로 떠나고 싶은데 발목이 길에 묶였다 아쉬운 대로 기억을 뒤져 낯선 이의 쓸쓸한 여행을 엿본다 먼지 냄새 나는 책 속이지만 키 큰 파도가 있고 비릿한 선창 이제는 진부한 등대 늙은 갈매기들의 방파제 막소주와 막회 몇 점 어둠이 내려 앉는 먼 섬들까지 담고 가만히 제자리.. 詩舍廊/~2021습작 2019.06.25
퇴화 退化 퇴화 退化 오랜만에 손글씨를 쓴다 겨우 A4 두 장 예전 원고지 기준으로 10매나 될까? 엄지와 검지 사이 글자들이 춤을 춘다 그새 손가락들은 오래된 길을 잃었버렸나보다 승차거부 부당 진술서 불편한 글씨들에 짜증을 싣고 글씨를 잃어버린 생각은 하냥 초조하다 빈 모니터를 보면 글을 .. 詩舍廊/~2021습작 2019.05.30
휴식 휴식 뜨거운 욕조에 누워 지난 일주일이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일 커피 한 잔 냉수 한 컵 시집 한 권 말할 수 없는 다른 하나까지 더해 어제를 위로한다 피로는 곧 더워질 것이고 커피 몇 모금 시 몇 편에 땀이 맺히면 냉수 한 잔 그러는 사이 서쪽으로 해는 지고 잠깐 깬 휴식도 지겠지 창.. 詩舍廊/~2021습작 2019.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