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 2210

루틴과 감사

. #루틴과감사 습관은 아니고 가능하면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들.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오 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고 인터넷으로 성경 몇 장을 읽는다. 특별히 신앙심이 깊어서는 아니고 평생의 과제로 여기는 절대자의 존재 더듬기를 놓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오늘은 신약 데살로니가전서와 구약 잠언을 읽는다. 잠언은 오늘이 마지막 장. 마싸왕 르무엘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가르친 교훈이다. 좋은 아내의 덕목을 가르치고 있다. 다소 남자를 위해 절대적 희생을 강요하는 내용이 많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이해는 된다. 끝무렵에 남편과 아들들이 하는 칭찬이 있다. '살림 잘하는 여자가 많아도 당신 같은 사람은 없소.' 늘 고마운 내 옆지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ㅎㅎ

친구들 덕에 삽니다.

. 친구들 덕에 삽니다. 환갑을 바라보는 시절을 사는 요즘 살아 온 세월을 돌아볼 때가 잦습니다. 제대로 된 회사 생활을 그만둔 때가 얼추 사십대 후반이었는데 그 후의 삶은 이래저래 부평초 같았습니다. 사업도 해보고, 짧게 다시 직장 생활도 해보고, 택시기사, 보험쟁이 등 불안정한 생활도 많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고비들마다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보험일을 시작했을 때 먼저 전화를 걸어와 첫 계약을 해줬던 친구, 택시를 몰 때 해외출장 가는 길 인천공항까지 일부러 내 차를 타고 갔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험한 일 하지말라며 회사에 자리를 만들어 월급을 받게 해준 친구 덕분에 몇 년 보일러회사와 파주프로방스마을에서 일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개인택시를 할까 고민하던 내게 보청기 사업을 권유하고..

자산어보

.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뒤늦게 본다. 조선후기 실사구시의 학문을 추구했던 정약전, 약용 형제가 정조 사후 서학을 했다는 이유로 흑산도로 강진으로 유배를 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잘 알려진 대로 동생 다산은 강진 유배시기에 목민심서를 비롯한 방대한 저술과 후학을 남기고 후일 유배에서 풀려나와 귀환을 한 반면 정약전은 당시로서는 절해고도였을 흑산도에서 주류 학문과는 무관한 자산어보 같은 실용저술에 집중하다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이준익감독은 이 영화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는 인류가 지금 처한 자연과 인간에 대한 메시지를 정약전과 창대를 통해 이야기 하고 또 하나는 다산과 창대를 통해 정치의 한계, 진보의 한계 같은 것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정치는 그것이 진보이..

압박 기피 증후군

. #압박기피증후군 성격상 할 일을 쌓아두고 있으면 힘들다. 능력이 안돼 해결하지 못한 일을 두고 보는 것도 힘들지만 해결해야 할 일들이 내가 할 수 없는, 누군가가 해주길 기다리는 일도 힘들다. 오픈을 열흘 정도 남기고 일들은 눈앞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대부분 내가 할 수 없어 기다려야 하는 일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잘 될 일들이다. 그런데 자꾸 답답하다. 불확정의 상황들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이 성질머리 덕에 한편 일손이 빠르다. 능력있다. 소리를 들은 적도 있지만 사실은 내가 스스로 느끼는 압박이 싫어 후다닥 해치운 일들이 많았다. 참 고약하고 찌질한 성질머리다.

위안

#위안 살아있는게 힘들 때면 꾸역꾸역 기대는 것들이 있다. 사는 일이 바쁘거나 신간이 편하면 잘 찾지 않다가 벼랑에 섰다 싶으면 고개를 돌려 매달리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神이고 또 하나는 詩다. 지난 두 달, 뭘 새로 한답시고 바빴다. 神은 까마득하고 詩는 너덜하다. 神과 詩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아마 지금 나는 살만한가보다. 특별히 詩는 지금 외출중이다. 댓군데 투고가 퇴자를 맞고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 것이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그래도 또 올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詩는 그저 나를 위로하는 역할이 전부다. 지금 위로가 필요없으니 그도 쉬는 것. 예술? 그건 내게서 멀다. 따라서 시집을 묶는 일도 사실 별 의미없는 일이다. 나를 위로하는 詩를 남에게 읽혀 무엇하리. 예술? 그건 내게서 멀다.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장석남

. 水墨 정원 9 - 번짐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채 번져서 봄 나비 한마리 날아온다 -장석남 창비시선. 2001. ------------------------------------- 장석남 다시 읽기 세번째. 바야흐르 시인은 이제 고이는 못물이 되고 번지는 수묵의 경계가 되고 조금씩 사라져 간다. 이십년 전부터 시작된 소멸의 조짐은 최근에는 죽음 저편에서 詩를 쓰기도 하니 오래 지..

예술의 주름들 / 나희덕

. 뭔 일을 새로 벌여 통 책을 읽지 못한다. 일년에 이백 권 정도의 책을 읽었는데 일주일 동안 시집 한권도 못 읽으니 오히려 신기하다. 이게 정상이지 싶다가도 괜스레 불안하다. 일종의 중독과 금단 현상이다. 그래도 읽고싶은 책은 세상에 자꾸 나오고 목록만 쌓인다. 그 중 한 권, 이 책. 나희덕시인이 쓴 예술의 주름들. 詩가 분명히 예술일진데 내가 쓰는 詩를 예술이라 여긴 적이 없다. 내게 예술은 아직 감상의 대상일뿐 창작의 대상은 아니다. 한마디로 수준 미달이다. 나희덕시인 정도면 분명 훌륭한 예술가다. 그의 詩를 읽으며 감동받은 적이 많으니 내겐 더욱 그렇다. 그가 보는 예술은 어떤 것인지, 예술의 세계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예술이란 무엇인지, 나도 언젠가는 예술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런지..

목숨공장

. #나무지옥 한달 전쯤 둘째가 데려온 벤자민이 죽은 것 같다. 처음부터 비실비실해서 큰 화분으로 분갈이도 하고 나름 살뜰히 살폈는데 버티지 못했다. 분갈이때 보니 이미 뿌리가 시원찮았는데 그 탓이지 싶다. 식물도 공장에서 생산되는 시대. 대충 키워 그럴듯한 화분에 담아 팔아버리면 그만. 잘 사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짓이다. 우리집 강아지 팝콘도 그랬을 것이다. 그저 생산되고 유통되다 버림받고 우리집까지 왔다. 잘 살지 못해 많이 아팠고 7년이 지난 요즘에야 겨우 안정됐지만 이미 늙어버렸다. 목숨이 생산 유통되는 일. 자본은 생명의 가치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거래와 이윤에만 집중한다. 그 메커니즘속에서 동물도 식물도 고통 받는다. 특별한 기회가 없으면 목숨을 잃기 십상이다. 떠나는 생명을 보고 ..

국 이야기

. 늘 마르고 뻑뻑한 목이 된 연식 탓이겠지만 우리 집은 국을 자주 상에 올린다. 찌개도 심심찮게 끓이지만 국을 이기진 못한다. 전날 한 잔 한 아침이거나 몸이 지쳐 입맛이 시원찮은 끼니때면 국 한그릇에 밥 한덩이 말아 넘기면 기운을 차릴 수 있다. 찌개가 담당할 수 없는 손길이 한그릇 국에는 분명히 있다. 우리집 5대 국이 있다. 소고기국, 미역국, 오이냉국, 김치국, 아욱, 근대 된장국이다. 소고기국은 무우와 대파를 많이 넣은 대구식 따로국밥으로 육개장에 가까운 맛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끔 끓여주던 그 맛을 아내가 이어받아 맛보여 준다. 어머니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시절보다 양지고기가 더 많이 들어간다는 정도. 미역국은 아내의 애정국(?)이다. 언제 먹어도 좋다는 아내의 미역국 사랑은 세월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