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 2210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 / 유홍준

. 참새 새 중에 제일 예쁜것 참새, 작야야 돼 오리는 좀 크다 싶고 닭은 좀 무섭다 싶고 참새가 딱 좋아 주먹에 쏙 들어오는 크기, 그게 내가 생각하는 크기, 내가 만만하게 생각하는 크기야 그림 그리는 사람을 만나면 참새나 몇 마리 그려달라고 해야지 나도 이제 낼모레면 노후, 연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저 산 밑에 집을 짓고 참새 노는 거나 내다보며 살아야지 조그만 것들이 쪼르르 쪼르르 달려가 무언가를 쪼면 무료도 즐거울 거야 무료도, 행복할 거야 누가 알아 저 작고 예쁘고 앙증맞은 것 몇 마리를 잡아 구워 먹으면 내가 주먹만 해질지 치매에도 안 걸리게 될지 저 작고 앙증맞고 예쁜걸 먹었다는 죄책감도 오래 시달리게 될지 그 죄책감 덕분에 도덕군자가 될지 암만 생각해도 새 중에 제일 예쁜 건 참새, 그런..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이성복

. 이성복시인의 시집을 읽고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대단하군! 하는 수 밖에. 오래된 시집을 읽으면 뜻밖의 행운을 얻는 경우가 있다. 이 시집, 예전에 읽었음이 분명한데 해설을 황동규시인이 쓴 걸 이제 알았다. 환상적이지 않은가? 이성복의 시집을 황동규가 해설한다는 게.. 얼마전 읽은 시집의 해설자가 김현선생이었을 때보다 더 반가웠다. 황동규 시인이 여전히 그저 먹먹해 하는 내게 이성복 시의 길을 몇 개 가르쳐줬다. 의미 연결 방법으로서의 연상, 연상 전개의 속도감, 근원적 고통 같은 것들이 이 시인 시세계의 차별화 요소라고. 그런 것들이 단단하게 어울어져 흐르며 시적, 예술적 느낌을 만든다고.. 그리고 시인 스스로 '무한화서' 같은 시론 강의에서 거듭 강조한 '언어에게 길을 맡기고 쭉 밀고 나..

준비 200622

택시를 그만 두고 파주에 출근한 지가 벌써 일 년이 흘렀다. 애초에 회사 차량 운전이 첫번째 보직이었지만 운전 외에 짐도 나르고 하는 육체적 일을 하는데 한계가 있어 회사에서는 운전을 따로 할 젊은 직원을 새로 구했다. 따라서 내가 이 회사에서 존재할 수 있는 제일 큰 효용은 사라진 셈이다. 그런데 아직 잘리지 않아 일 년을 채우고 이 년째를 향해 가고 있다. 대표의 배려일 수도 있고 어줍잖은 광고 경력이 아직은 조금 약발이 남은 탓도 있을 것이다. 아마 배려가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배려란 유효기간이 짧다. 머지 않아 경제 논리가 감성 논리를 짓누르게 될 것이고 그때 나는 밀려날 것이다. 나이가 있고 업무에 한계가 분명하니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불만도 아쉬움도 사실 없다. 그..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이근후

.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생각하라. 때가 오면 자랑스럽게 물러나라. 한 번은 살아야 한다. 그것이 제 1의 계율이고, 한 번만 살 수 있다. 그것이 제 2의 계율이다. - . 에리히 케스트너 저자는 잘 모르는 분이다. 이 책을 펴낼 당시 85세 였고, 내 고향 대구에서 나고 자랐으며 이화여대병원에서 정신과 교수로 정년퇴임하셨다는 정도가 책에 나와 있다. 그저 85세 되신 교육자이자 의사 출신 노장이 인생을 어떻게 반추하고 또 지금을, 앞으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가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이전에 똑같은 동기로 김형석교수의 '100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읽고나서의 씁쓸함을 되풀이 하지 않을까 염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이분은 겸손하고 진솔하셔서 읽고 난 뒷 맛이 개운하다. 내용은 평범하다. 인생이란게 결..

데리다 Derrida/제프콜린스

미뤄두었던 지옥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Deconstruction의 개미지옥으로 만화책 종이배를 타고.. 그의 저술에는 탈선한 의사소통(derailed communication)과 결정 불가능성(undecidability) 이라고 하는 두 줄의 행렬이 있다. 파르마콘 pharmakon, 치료제와 독 모두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모호한 말. 데리다는 플라톤의 대립쌍에 파르마콘의 개념을 도입, 고정된 틀을 해체하고 가능성의 세계를 열고자 한다. 파르마콘을 다시 좀비의 개념에 적용하면, 살아 있지만 죽어 있고 죽어 있지만 살아 있는 존재. 결정 불가능의 존재. 결정 불가능은 이항 대립적 논리를 붕괴시킨다. 어느 쪽에도 적절하게 들어맞지 않아 대립의 원리 자체를 의문에 빠뜨리게 된다. 이항대립의 전통을 극복하고자..

푸코 Foucault / 크리스호룩스

몇 번 들이대다 실패해서 만화책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맥을 좁 잡아놓고나면 푸코의 개별 텍스트들을 그나마 좀 쉽게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 푸코의 의문. '과학적 지식이 진리가 아닌 권력과 연결된 것이 아닌가?' 푸코의 연구대상. '제도들의 복합적 체계에 투여된 지식' 진리나 정의보다는 제도나 권력에 부역하는 지식에 대해 집중. 책 속에서 인용된 마네의 그림을 찾았다. 푸코는 마네를 '표상의 관습과 결별'한 화가라 말한다. 소설가 플로베르와 함께. 그리고 그들이 근대의 탄생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정면을 바라보는 여자와 거울에 뒷모습이 비친 여자는 같은 사람이다. 마네는 이 여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표현의 관습상 비스듬히 서있어야 한다는 틀을 무시하고 정면..

상처받지 않을 권리 / 강신주

장자를 읽기 위해 강신주를 읽었다. 장자는 잠깐 두고 강신주를 좀 더 읽기로 한다. 책 읽기의 길 잃기는 가끔 이런 식으로 나를 몰고간다. 즐거운 미로라 생각한다. 노자가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철학을 설파했다는 강신주의 주장에 잠깐 난감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진정한 정의. 약한 자들을 위한 철학. 그 부분에 나름 일관된 성찰을 보이고 있는 강신주이고 이 책도 그 범주에 속한다. '자본주의의 진정한 목적은 또 다른 소비를 위해 다시 노동하게 하는 데 있다. 소비와 노동이라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의 굴레를 돌려야만 자본주의는 번영하고 발전할 수 있다.' 강신주 특유의 짝짓기를 통한 논리 전개는 이 책에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다. 그 밖에 시인과 철학자의 짝짓기라는 전형도 여전하다. 그 커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