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결혼기념일 혼자 26년 같이 26년 스물여섯 먹은 큰딸 그 시절의 오늘 참 다툼도 무던히 많았던 세월 지나 모서리 다 닳은 오늘 억척도 늙고 후회도 시들어 그저 피식 웃기만 하는 노련함이란 레스토랑에 장미꽃 보다 갈비탕 한 그릇이 좋다는 내 아내의 결혼기념일 비 오는 결혼기념일 2013... 詩舍廊/~2021습작 2013.04.25
청춘 청춘 부모가 별거 중이라는 딸 아이 친구는 몇 년째 잠들지 못해 약을 먹고 있다고 하더군 또 다른 친구는 갓 스물에 따로 사는 아빠 생각이 나면 술을 마시고 전화로 강짜를 부린다던가 그저께 내 딸, 집에만 들어오면 불안해서 치료 받고 있다고 펑펑 우울을 쏟아내더군 우울이 낳는 또 .. 詩舍廊/~2021습작 2013.04.23
일어서는 하조대 일어서는 하조대 시린 언덕 넘어 빈 마음을 버리러 갔을 때 모래 섞인 바람 한 줌 슬쩍 마중을 나왔다 하얀 머릿채를 흔들고 멍든 속살 설핏 비추며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벌떡 벌떡 일어서던 그대 다가오다 부숴지고 서럽게 엎드려 물러서던 그러나 손 내밀어 젖은 모래 움켜잡던 그대 기.. 詩舍廊/~2021습작 2013.04.23
생활 계획 생활 계획 눈이 쉬 떠지지 않더라도 아홉시에는 사무실 책상에 앉을 것 삼십분 동안 경전을 읽고 마음 가는 대로 구차하지 않은 기도를 할 것 그 다음 밤새 쏟아진 메일에 대꾸를 할 것 절대 두 일의 순서를 바꿔서는 안됨 유일신은 두번째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커피를 한 잔 타.. 詩舍廊/~2021습작 2013.04.18
소지(燒紙) 소지(燒紙) 비는 그예 그쳐간다 젖은 밤도 눈물을 닦고 누울 것이고 하나 둘 시간들은 눈을 뜨겠지 그러기 전에 당신은 떠나야 한다 영원히 쓰러지고 싶다고 그건 당신에게 허락되지 않는 틀 눈 똑바로 뜨고 천천히 한 땀씩 무너지는 주변을 바라봐야 한다 오래 쌓은 격자무늬의 관계들이.. 詩舍廊/~2021습작 2013.02.27
눈물 속에는 눈물 속에는 젖지 않은 눈이 있을리 없지만 유난히 축축한 눈이 있다는군요 어젯밤 내린 눈이 그랬답니다 습설이라던가요 무겁게 내려 나무가지를 부러뜨리고 지붕을 내려 앉혔다 세상이 야단입니다 좀 다르긴 하더군요 어둠을 지우며 내리는 모습이 뭔가를 부여안고 내리는 듯 보였습.. 詩舍廊/~2021습작 2013.02.07
連命 連命 몇 걸음 더 걸으면 분명히 끊어질 것같은 내일 돌아보면 그 단절들 주렁주렁 영글려 모질게 긴 걸음 만들어 왔음을 바라보는 질긴 끝 가는 길 그 곳이라 그 것은 스러지지도 못하는 주제 삶이란 두려움을 묶은 한 다발 단단한 여린 시간들 또는 안절부절들 어차피 그어지리 굳게 나.. 詩舍廊/~2021습작 2013.01.25
그림자 둘 그림자 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상당히 차분하게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완고하게 지울 수 있었어요 내것이 사라진 지는 벌써 오래 전 곁을 넓히며 조금씩 얻고 있는 내일들 끝이 어떻게 될런지는 가늠할 수없어요 사라진 이의 미래란 알수 없음을 넘어 도대체 있기나 한 것일까요 끝에서.. 詩舍廊/~2021습작 2013.01.15
소설과 기억력 그리고 절대적인 것 소설과 기억력 그리고 절대적인 것 최은미의 단편을 읽는다 2003년에 죽은 홍콩배우 리 나는 그를 잘 안다 얼굴은 또록한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리 라는 성이 기억을 가로 막는다 주인공은 시안으로 간다 기억 속에서 그의 동생은 나시리아로 간다 리는 24층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대구.. 詩舍廊/~2021습작 2013.01.04
나무 세 그루 나무 세 그루 세계는 둥근 존재 주위에서는 둥근 것이다 - G. 바슐라르 뿌리가 나무를 키우는 것일까 줄기와 잎이 나무를 키우는 것일까 땅을 소진하는 뿌리 하늘을 응축하는 가지와 잎 나무와 땅이 닿는 지평, 경계는 모호하게 그어져 연속되는 숨소리 땅 속에서 우주를 찾을 수 있다면 .. 詩舍廊/~2021습작 2013.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