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 가을 여행 기차가 한강 철교를 지날 때마다 안도한다 뿌연 얼굴로 드러누운 한강은 깊고 끈질긴 경계 오래전 이 무표정한 넓이를 건너온 후 한 번도 온전히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기슭만 오가며 쇠락하는 반환 철컥철컥 기 차는 철교를 씹으며 달린다 흐린 마음에 붙 들린 그림자는 .. 詩舍廊/~2021습작 2013.12.12
답장 답장 저 멀리 수 많은 겨울들에게 편지를 쓴다 처음엔 볼펜으로 일일이 봉투를 썼다 지워진 펜혹이 다시 일어나 피가 맺혔다 글씨는 너무 비생산적이야 프린트를 한다 적당히 나를 숨기고 추운 곳들의 주소를 붙인다 살면서 제법 많은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받은 답장은 겨우 몇 몇 그나.. 詩舍廊/~2021습작 2013.11.21
가을 면접 가을 면접 스물네개 둥치가 맺은 아직 푸른 단풍나무 손가락 마다 쌉쌀한 햇발이 소란스럽다 반듯하게 굽이치는 아침 둔덕을 돌아 아이는 어른이 되러 완고한 성으로 들어갔다 푸른 기슭 어깨에 찰방찰방 웃는 바람 한 조각 아이가 굳게 딛었던 길 위론 바람 그림자들 까르르 새초롬 입 .. 詩舍廊/~2021습작 2013.10.17
그러면 될까 그러면 될까 점심을 굶고 소주만 마시고 버스를 타고 당구는 그만두고 카드를 쓰지 않고 지갑엔 만 원만 결혼식은 가지 않고 장례식엔 꼭 필요한 곳만 책은 다시 읽고 사람은 낮에만 만나고 그리고 담배는 담배는 끊을 때까지 더 싼 걸로 최대한 참아서 줄일게요 그러면 될까요? 2013. 10. 13.. 詩舍廊/~2021습작 2013.10.13
그 여름밤의 감포 그 여름의 감포 취해 집앞에 부려지듯 감포에 닿았다 선술집에 걸어두었던 가슴은 사라지고 소주만 몇 잔 독하게 남았다 어창 앞 오르막 골목 여인숙 이층 방 소금 부숴지는 창문을 열어젖히면 마른 가자미떼 위로 여린 물결 몇 줄기 반짝이고 엇갈린 등대 사이 검은 등뼈 굼실대는 동해 .. 詩舍廊/~2021습작 2013.09.16
無價値觀 無價値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열 가지를 써보라 소중한 것 소중한 것 딸, 아내, 어머니..... 가족 돈! 눈, 다리, 머리...... 건강 책들? 예수, 사랑? 詩 자존심 그 중 가장 소중한 것 한 가지를 꼽으라 소중한 것 소중한 건 딸? 아내?..... 가족 돈? 가족! 이것들은 왜 소중한가 내게 꼭 필요해.. 詩舍廊/~2021습작 2013.09.02
개 망신 개 망신 혓바닥 축 늘어진 정오 빈 집에 들어가 깃발을 꽂는다 한 모금 그림자로 타버린 구름이 자전하는 가슴 위에 뛴다 침착해야해 달아오른 바람 한 줄기 깃발에 얹힌다 흔들리지 않도록 붙든다 마른 담벼락이 바스락 인기척은 아직도 멀다 기다리지 않고 떠나는 것이 배려 뒤 돌아 보.. 詩舍廊/~2021습작 2013.08.16
연재 연재 한 달에 두 편 시를 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언감생심 나같은 삼류에게 연재라니 그간 갈겨둔 시덥잖은 습작 묶음이 있으니 어찌어찌 다듬으면 일년은 채울 수 있으리라 못이기는 체 노력해보겠노라 승락을 했었다 반 년이 지났다 마감날은 결제일처럼 닥쳐오고 얼굴 벌건 시 열 편이.. 詩舍廊/~2021습작 2013.06.16
오월 밤 오월 밤 오월. 하면 마음이 괜히 탱글탱글 그 풋풋 여문 계절 초저녁 반주 한 잔에 겨워 깜빡 잠이 들었다 머리 맡에서 웅웅 소리 들려 실눈 뜨니 아내와 큰 딸 인생 철학이 소소하다 잠 깬 이도 멋적고 깨운 이들도 멋적어 뒷짐 지고 어슬렁 나선 베란다 어둠이 반들댄다 모퉁이 화단에서 .. 詩舍廊/~2021습작 2013.05.09
해체 해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詩라도 쓴다 머리는 뒤편에서부터 굳고 뱃속은 아래에서부터 치받는다 생각 하나 나타나면 짓이겨지는 혼돈 갈 수도 멈출 수도 없이 핏줄 속으로 떨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詩라도 쓴다 2013. 5. 2 詩舍廊/~2021습작 201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