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년 윤년 아내 생일 근처면 어머니 생신이 맴돌텐데 달력은 아직도 구월 양력이 십일월인데 음력 구월이 왠 말 달력 뒤집으니 그 앞도 구월 내 생일 동생 생일 돌아가신 아버지 생일도 구월 구월이 왜 이리도 길어 저승에서 빠진 달이 한 번 더 새겨진 달 윤달 저승 준비 하는 달이다 벼르던 .. 詩舍廊/~2021습작 2014.12.02
휴관 휴관 문 닫은 도서관 주차장에서 베토벤의 소나타를 들으며 문 닫은 도서관 찾는 이들의 헛걸음만 거듭 바라본다 십이월 첫 날 먼지처럼 첫 눈은 오락가락 둥그스럼한 석수 산자락 앞은 껑충하게 헐벗은 나무 몇 그루 마른 잎 대신 눈을 흘린다 시퍼런 하늘엔 허술한 구름 몇 점 비스듬히.. 詩舍廊/~2021습작 2014.12.01
친구 친구 팔십이년쯤으로 기억하네 아카데미극장 옆 골목 이층 커피숍에 앉았던 시간은 오전이었던가 오후였던가 그곳에 들어오기전에 뭘 했던지도 모르겠네 어렴풋이 술은 먹지 않았던 것 같으네 어쩌면 술 사줄 사람과 시간을 기다렸는지도 하여간 자네와 난 서쪽 벽에 기대여 놓.. 詩舍廊/~2021습작 2014.11.24
프리랜서 141113 프리랜서141113 아홉시에 일어나 인스턴트 우동을 맵게 먹고 집을 나선다 넥타이 대신 면바지와 스웨터에 코트를 걸치고 바람 차니 코트 깃을 세우고 낡은 차 대신 버스를 탄다 마을 버스 내려 갈아탄 사당행 버스 남태령을 넘으며 깊어가는 절개 벼랑 붉은 얼굴을 오래 바라본다 이수에서.. 詩舍廊/~2021습작 2014.11.13
남대문 남대문 몇 해 전 타올랐다 다시 세워진 남대문 단청이 지워진다 나무가 갈라진다 부활이 소란스럽다 남대문 남쪽의 큰 문 문 아무도 문은 말하면서 문을 말하지 않는다 타지 못해 여전한 직육면체 석축 사이로 길죽한 아치 오랜 발걸음들이 켜켜히 쌓인 시간의 지붕 대문이 그렇게 좁다.. 詩舍廊/~2021습작 2014.11.10
푸른 가을에 푸른 가을에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어디라도 가고 싶다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무엇이 되고 싶다 아무 것도 되고 싶지 않다 거꾸로 흐르는 깊은 강 시퍼런 가슴 속으로 흐르고 싶다 이 곳에 멈춰 시퍼런 정신.. 詩舍廊/~2021습작 2014.11.05
검은 시간 검은 시간 사정없이 잎을 베는 가을비 서슬이 무서워 콘크리트 속에 똬리 튼 종일 해 지고 몰래 기어나와 지워지는 시월 뒤를 밟는다 참수된 플라타너스 수급을 밟으며 검게 넘는 남태령엔 언제나 먼저 지나간 녀석의 흔적 계절에 관계없이 늘 북으로 기어오르는 습관 도착할 사당엔 수 .. 詩舍廊/~2021습작 2014.10.31
出世 出世 긴 계단 세상으로 오르는 마디마다 가로 세로 선명한 눈금 발 디딜 자리 수 많은 발들 눈들 모로 딛다 뒤틀린 발목 떨어지는 앞굼치 누구는 뒤에서 밀고 앞에서 당기는 계단 위의 계급 어찌 올라도 끝나지 않을 계단 자꾸만 늘어나는 가는 발목의 염좌 뒤에서 바라만 보는 빈 손 아빠.. 詩舍廊/~2021습작 2014.10.27
광야 광야 베두윈들과 사십년 모세는 광야에서 살았다 쓰여지기에 합당한 모습을 기다리며 바닥을 기며 살아 온 세월들 그 곳은 나를 위한 광야 스스로 또는 강제로 버린 수 많은 것들 십보라와 피의 아들을 버리고 광야를 떠난 모세 빈 손에 넘치게 걸린 소명 그 또한 쉽지 않은 마저 버릴 것.. 詩舍廊/~2021습작 2014.10.12
가까운 기억 가까운 기억 한 이십여년 살던 동네 뒷골목에 앉아 뒤를 돌아 보는 일 수없이 기슭을 오르내렸을 늙은 바람에 실려 오후가 잔잔히 흔들린다 처음엔 싸우듯 살았다 좀 지나선 회개하는 체 살았다 그 사이 잎들은 가을로 물들고 행동하지 못한 계획이 기어이 잎 질 때 먼지 한 모금 일으키.. 詩舍廊/~2021습작 2014.10.11